기억의 퇴적물

온라인 개인전

기억의 퇴적물

by 노경화 · 조회수 526회  · 2021년 4월 12일

폭력. 이것은 그 형태와 방법이 몹시 다양한데 간혹 제 정체를 숨긴 채 행해지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하며 끊임없이 고통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노경화는 자신이 경험한 폭력의 단편적 기억을 모아 무대를 세웠다. 무수한 희생자들과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손을 단단히 부여 잡고 끌어올리는 그의 작업은 '조명하는' 동시에 '기억하기' 위한 필연적 몸부림인 셈이다.

노경화 작가

안녕하세요? 노경화 작가입니다.

저는 주로 드로잉, 페인팅을 하고 있어요. 과거부터 현시점까지 제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폭력'입니다. 이 큰 줄기 속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에 관해 이야기해 왔고 최근에는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존재'들을 조명하는 연작을 하고 있습니다.

《갤러리 시선 공모전》, 2021

기억이 뱉어낸 퇴적물에 관한 진술

모든 종류의 기억은 퇴적물이 됩니다. 직접 경험한, 주위 사람들의 삶에서 목격한 것, 사회적인 규범이나 인류 전체의 역사 같은 것들이 쌓여서 나라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많은 작가가 있고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다들 '내면에 들어온 어떤 것'에 관해 말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퇴적물이라는 게 결국에는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화의 장>, 2018, oil on paper, 29.7x42.0cm

동시다발적인 기억, 내 안의 꼬리표

물리적 세계에는 분명한 순서와 층위가 있어요. 그런데 제 내면에서는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지 않고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무언가를 기억해 낼 때에 함께 떠올리는 시점은 내면의 많은 것들 중 하나를 찾기 위한 꼬리표에 불과해요. 그것들은 모두 같은 선상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까요.

<모성의 전당>, 2017, oil on canvas, 116.8x72.7cm

작업에서 다루는 것들. 그러니까 제 내면에 퇴적되어 정체성이 된 것들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집단 따돌림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이 주요해요. 그렇기에 잘 보이지 않는 폭력과 부조리함, 권력에 관한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됐죠.

우리 주변의 감시자들

저는 아들이 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딸이 계속 태어나는. 그래서 할머니나 엄마가 출산을 많이 하셨던 거예요.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면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졌어요.

<감시자와의 피크닉>, 2018, oil on canvas, 53.0x45.5cm

그림에 등장하는 둥근 얼굴의 '감시자'는 여성에게 기대하는 폭력적인 가치들.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을 나타내요. 선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이요. 저는 그게 자상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사실은 주입을 하고 강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잊힌 누군가의 삶을 기록하는 것

인류 전체 역사를 보면, 결국 승리한 자들, 권력을 쥔 자들의 기록이잖아요. 분명히 그들만 있었던 건 아닌데. 작은 이야기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치부되는 것 같았어요. 지금은 세상을 떠나버린, 제가 사랑하는 작고 연약했던 이들도 분명 삶의 주인공이었잖아요. 그런데 쉽게 지워져버리는 게 아쉬웠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조명하고, 주인공으로 구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 분이 내려오셨다>, 2020, oil on canvas, 91.0x116.8cm

찬란하여라, 권력에서 소외된 자여!

지금까지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정도였다면,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기형적인 구조를 전복하는 거예요. 권력을 갖지 못했던 존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기존 세계에서는 마치, 빌런 같은 존재들인 거죠.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정복하는 과정들을 그리고 있어요.

비둘기 모자나, 베일을 쓴 이들은 사회적으로 힘없는 존재의 은유에요.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으니까, 의식을 통해 태초부터 악랄한 신을 소환하려고 하는 것이죠. 기존의 세계를 정복하려고요.

제가 신화에 관심이 많아서 모티프로 삼곤 하는데요. 모두 공통점이 있었어요. 여성 악당은 등장하더라도 비중이 작거나 금방 퇴장하는거에요. 이런 것들을 비꼬아서, 제가 만든 세계에서의 악신은 태초부터 악랄하고 아무 사연 없이 나쁜 여성 악당들이죠.

콜라주 작업 과정

콜라주 작업 모음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상야릇함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합성하는 것을 되게 좋아해요. 불타는 물이라든지, 눈송이처럼 합치되지 않는 서로 다른 개념들은 이상야릇한 느낌이 나잖아요.

이미지적으로도 그런 식으로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름답게 그리지만 파편화 시키기도 하고, 흔하지 않게. 나의 호흡을 갖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모두가 서로를 사랑했으면 좋겠네.

최근에 제가 작업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계속해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해왔고, 인류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현재의 결론은, 이게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거예요. 인류애 없이는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잖아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진솔하게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주제로만 다루면 언젠가는 밑천이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마음을 다해서. 제 진솔함을 담고 싶어요. 이렇게 제 작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노경화 작가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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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내가 서있고, 숨 쉬고, 살아가는 시공간은 나의 살에 스며든다. 물리적 세계는 늘 변한다. 그리고 나의 살은 늙고 손상된다. 언젠가 나의 살은 사라진다. 살이 사라지면 퇴적된 것들 도 사라진다. 사유, 삶, 사랑했던 것들, 먼저 떠난 모든 살들에 대한 정보는 분해될 것이다. 이런 것이 나는 못내 아쉬운 것이다. 나는 이 퇴적물들을 붙잡으려고 작업을 한다. 살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살이 사라지면 그것이 담고 있던 그 모든 것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죽음, 사라지는 시간을 마주했을 때 나는 큰 의문에 빠지게 된 것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행동하던 누군가가 영영 동력을 잃고 눕게 되면, 도대체 그 정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 속에서 나는 나의 정보를 병에 걸리지 않는 무언가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정보를 복제해서 증식해 나간다. 그 정보는 가상 세계에서 또 복제되며 떠돌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에 걸리기도 한다. 나는 세상에 나를 그렇게 채워 나간다. 나의 정보를 인식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는 한 나는 오래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작업 속의 세계를 구성할 때에는 이전에 경험한 것과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가 가능한 것의 혼합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동그라미를 상상할 수 있으며 이것은 물리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네모난 동그라미는 상상할 수 없으므로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시각적 상상이 가능한, 그러니까 존재하거나(또는 했거나) 존재 가능한 것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모든 종류의 기억은 퇴적물이 된다. 이 퇴적물 위로 존재하는 형상과 존재 가능한 형상이 구조물을 이룬다. 이러한 세계의 특징은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퇴적물은 물리적 세계에서의 퇴적물과는 의미가 다르다. 물리 세계의 퇴적물은 시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인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두뇌 속에서 형성된 퇴적물은 오직 한 겹으로 마음의 표면을 감싼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해낼 때에 그 기억이 형성된 시 점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그저 일종의 꼬리표로서 뿐인 것이다. 내면에 저장된 각각의 기억은 선행되고 후행 되는 식의 시간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모든 사건이 언제나 동시에 일어난다. 내가 구현한 화면은 그 세계를 보여주는 창으로 기능한다. 나의 회화는 드로잉의 집합체이며, 드로잉은 소서사의 집적이다. 나는 중요치 않게 여겨지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인다. 작은 이야기를 중요한 이야기로 만들어가며 잊힌 누군가의 삶을 기록한다.

노경화

노경화

2014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서양화전공 졸업 2012 동국대학교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 [개인전] 2020 눈을 감으면 보이는 불타는 눈송이, 백두강산, 서울 2019 푸른 한숨과 단맛, 달맞이 원룸(현대미술회관), 부산 저 너머 재앙으로부터, 예술공간 서:로, 서울 2018 생략되는 것으로부터, 갤러리 밈, 서울 2017 복진의 삶, 아트 스페이스 오, 서울 복진의 신화, 대안공간 눈, 수원 2016 입김이 나오지 않는 사람과 풍경들, 오!재미동 갤러리, 서울 2015 살의 단면, 예술지구_p ADP1, 부산 2014 최종적으로 편해지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스칼라티움 아트스페이스, 서울 [2인전] 2013 보이지 않는 풍경, 신한 갤러리 역삼, 서울 [단체전/아트페어] 2021 Heal the World_PART 3, OCI 미술관/커먼옥션, 서울 브리즈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서울 갤러리시선 3인 공모전, 갤러리 시선, 서울 2020 지속되는 순간들, 호반아트리움, 광명 지구인을 위한 질병관리본부, 인디아트홀 공, 서울 2019 이 전시는 교훈이 없다, 현대미술회관, 부산 브리즈 아트페어, 노들섬, 서울 2017 쪼물쪼물마켓 + 드로잉페스티벌, 예술지구_p, 부산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 대안공간 눈, 수원 서울디지털대학교미술상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서울 2016 YAP 열음: 페스티벌, 문화공간 이목, 서울 내일의 작가 전, 겸재 정선 미술관, 서울 일곱 개의 방_특이한 부드러움 상냥한 떨림, 서울혁신파크 전시동, 서울 부상청년,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 3로비, 서울 YAP 전, 갤러리 일호, 서울 2015 #해시태그 전, 갤러리 다온, 서울 자연은 마음을 듣는다, 힐리언스 선마을, 홍천 2014 서울아트쇼 블루인아트, 코엑스 A홀, 서울 [레지던시] 2016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창작공간_p 단기 레지던시 프로그램) 2015-2018 창작공간 난달 2기 입주작가 2014-2015 예술지구_p 1기 입주작가 [수상/선정] 2017 제7회 서울디지털대학교미술상 입선 2016 제7회 겸재 내일의 작가 최우수상 2013 Shinhan Young Artist Festa 선정 [소장] 겸재 정선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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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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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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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대한 관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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